Supreme x Louis Vuitton 2017 룩북 스트릿웨어와 럭셔리 협업

패션 취향 변화, 스트릿웨어에서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패션 취향이 변했다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좋아하는 브랜드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한때 즐겨 입던 옷을 더 이상 입지 않고, 새로운 브랜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식이다.

하지만 내 옷장을 돌아보면 변화는 조금 다르다.

슈프림과 팔라스는 여전히 좋아한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컬렉션을 찾아보고, 재미있는 그래픽이나 협업 제품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 한정판 스니커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작 요즘 옷장을 열었을 때 가장 자주 손이 가는 옷은 JW 앤더슨, 올세인츠, 코스 같은 컨템포러리 브랜드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옷을 입는 방식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관심에서 취향으로 넘어간 2017년

지금 생각해보면 패션이 단순한 관심사를 넘어 실제 취향이 된 시점은 2017년 전후였던 것 같다.

그전에도 옷과 스니커즈를 좋아했다.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찾아보고, 해외 스트릿 브랜드와 스니커즈 발매 소식을 보는 것도 즐겼다. 하지만 그때까지 패션은 내가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바라보고 동경하는 대상에 조금 더 가까웠다.

2017년을 지나면서 경제적으로 조금씩 여유가 생겼고, 그때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화면으로만 보던 슈프림과 팔라스의 시즌 제품을 직접 구매하기 시작했고, 발매를 기다려 한정판 스니커즈를 사는 일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취미가 됐다.

그때부터 패션은 ‘좋아하는 것’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직접 돈을 지불하고, 배송을 기다리고, 어렵게 구한 제품을 손에 넣고, 실제로 입고 신으면서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취향을 현실에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감정도 있었다. 내가 어렵게 구한 옷과 신발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정된 수량으로 출시된 제품이나 특정 시즌에만 등장하는 그래픽을 어렵게 구했다면, 그것을 옷장 안에 보관하기보다 실제로 입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당시에는 로고와 그래픽이 분명한 스트릿웨어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슈프림의 박스 로고처럼 멀리서도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팔라스의 Tri-Ferg처럼 브랜드를 상징하는 그래픽, 시즌마다 달라지는 프린트와 협업 제품들이 내 옷장의 중심에 들어왔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는 옷의 소재나 완성도만큼이나 그 제품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과시욕이라는 단어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그 시기의 나에게는 패션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로고와 한정판으로 취향을 설명하던 시절

스트릿웨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옷은 때때로 일종의 언어가 된다.

같은 브랜드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픽 하나만 보고도 어느 시즌의 제품인지 알아볼 수 있었고, 스니커즈를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발에 신고 있는 모델 하나만으로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내가 Supreme이나 Palace를 즐겨 입었던 것도 단순히 브랜드의 이름이 유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스케이트 문화와 음악, 그래픽 디자인, 아티스트와의 협업, 그리고 매 시즌 새로운 제품을 기다리는 경험까지 포함돼 있었다.

한정판 스니커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품을 구매한다는 행위보다 발매 정보를 찾아보고, 응모하고, 어렵게 구한 뒤 실제로 신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취미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타일링 역시 제품 하나하나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래픽 티셔츠 위에 스트릿 브랜드의 아우터를 입고, 눈에 띄는 스니커즈를 신었다.
각각의 아이템이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요소들이 동시에 말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옷 입기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그 감각을 싫어하지 않는다.

슈프림과 팔라스가 여전히 옷장에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입었는가’보다 ‘어떻게 보이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변화는 특정한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옷장을 열었을 때 이전과 다른 옷에 손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외부 업무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하루에 만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업무를 위해 여러 장소를 이동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옷에도 조금 다른 역할이 필요해졌다.

스트릿웨어는 여전히 편하다.
후디와 스웨트셔츠, 넉넉한 팬츠와 스니커즈의 조합은 지금도 하루 종일 입기에 가장 편한 스타일 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을 많이 만나는 날에는 조금 더 정돈된 옷을 찾게 됐다.
그렇다고 슈트나 포멀웨어를 입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편해야 하고, 움직이기 좋아야 하며, 내가 좋아하는 캐주얼한 분위기도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 했다.

다만 브랜드의 로고가 먼저 보이는 옷보다는 옷을 입은 사람 전체의 인상이 먼저 보이는 스타일을 원하게 됐다.
그 무렵부터 JW 앤더슨, 올세인츠, 코스 같은 컨템포러리 브랜드의 옷을 자주 입기 시작했다.


스트릿웨어에서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흥미로운 점은 이 브랜드들이 슈프림이나 팔라스와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JW 앤더슨은 기본적인 옷의 형태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니트나 셔츠처럼 익숙한 아이템에서도 비율을 바꾸거나 작은 디테일을 추가해 평범한 옷과 미묘한 차이를 만든다.
그래픽이 크게 들어가지 않아도 디자인적인 존재감이 있다.

올세인츠는 조금 다른 매력이 있다.
블랙과 뉴트럴 컬러를 중심으로 한 도시적인 분위기, 레더와 워싱에서 오는 약간의 록적인 감성은 내가 스트릿웨어에서 좋아했던 거친 느낌과도 어느 정도 연결된다.
조금 더 정돈됐지만 지나치게 얌전하지 않다.

코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실용적인 선택이다.
로고가 거의 없고 디자인은 절제돼 있지만, 막상 입어보면 실루엣과 비율에서 차이가 난다.
팬츠의 볼륨이나 셔츠의 떨어지는 방식처럼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실제로 옷을 입었을 때 전체적인 인상을 만든다.

그리고 이런 옷들은 외부 업무가 있는 날 특히 편하다.
상대적으로 격식을 요구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과하게 캐주얼해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하루 종일 움직이기에 불편하지도 않다.

이 균형이 지금의 생활과 잘 맞는다.


로고보다 실루엣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옷을 처음 봤을 때 그래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어깨선과 옷의 길이, 팬츠의 볼륨, 원단이 떨어지는 방식을 먼저 본다.

옷을 고르는 질문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이 제품이 어떤 시즌에 나온 것인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과 얼마나 자주 입을 수 있을까”를 더 많이 생각한다.

색을 선택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블랙, 그레이, 네이비, 베이지처럼 서로 쉽게 섞이는 컬러가 옷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그래픽을 좋아하고, 스니커즈를 좋아하며, 재미있는 컬러가 들어간 제품도 좋아한다.

달라진 것은 한 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옷이 차분해지면서 오히려 슈프림 티셔츠 한 장이나 한정판 스니커즈 한 켤레가 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모든 아이템이 각자의 존재감을 주장했다면, 지금은 하나의 아이템만 포인트로 남겨두는 방식이 편하다.


옷장에서 스트릿웨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스트릿웨어 이후의 옷장’이라는 표현은 조금 오해를 만들 수도 있다.
스트릿웨어를 떠났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슈프림 맨투맨에 팔라스 티셔츠를 입고 있다.
슈프림과 팔라스는 여전히 내 옷장에 있고, 여전히 좋아한다.
새로운 컬렉션을 찾아보는 것도 즐겁고,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다면 지금도 구매한다.

다만 예전과 달리 그것만으로 전체 스타일을 완성하지 않을 뿐이다.

슈프림의 그래픽 티셔츠에 코스 팬츠를 입을 수도 있고, JW 앤더슨의 니트에 스니커즈를 신을 수도 있다.
올세인츠의 아우터 안에 스트릿 브랜드의 티셔츠를 입는 것도 자연스럽다.
브랜드의 경계보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어떻게 섞느냐가 중요해졌다.

이 변화가 오히려 흥미롭다.
한때는 특정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취향을 설명해줬다면, 지금은 여러 브랜드에서 좋아하는 요소를 골라 하나의 스타일로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갖고 싶은 옷에서, 실제로 입는 옷으로

2017년의 나는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그동안 갖고 싶었던 옷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패션의 실제 사용자가 됐다.
그때는 어렵게 구한 제품을 소유하는 즐거움이 컸고, 그 제품을 입고 보여주는 것도 패션을 즐기는 중요한 방식이었다.

그 이후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옷장은 꽤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살 수 있는가’보다 ‘얼마나 자주 입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희소성보다 활용도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고, 로고보다 실루엣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과거의 취향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 시절 다양한 옷을 사고 입어봤기 때문에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취향은 이전의 취향을 지우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이 계속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의 옷장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브랜드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있다.
슈프림과 팔라스가 있고, JW 앤더슨과 올세인츠, 코스가 있다.
한정판 스니커즈도 여전히 있고, 아무런 로고가 없는 검은색 팬츠도 있다.

예전의 나는 옷을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옷을 통해 특별히 무엇인가를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내가 편하고, 지금의 생활과 잘 맞고, 입었을 때 자연스러운 옷을 고른다.

결국 패션 취향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취향은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그 취향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그리고 지금의 옷장은 그 변화의 기록이다.

Relat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