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h의 가을, 로니 파이그가 던지는 질문

가을의 공기가 느껴질 때쯤이면, 패션 씬은 약속이라도 한 듯 로니 파이그(Ronnie Fieg)의 Kith를 주목한다. 그의 새로운 컬렉션은 단순한 옷의 목록이 아니라,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지처럼 도착한다. 요란한 소음이 거리를 지배하는 시대에, Kith가 내놓은 2025년 가을 컬렉션은 나지막하지만, 가장 선명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이번 컬렉션을 감싸는 공기는 ‘진화한 프레피(Evolved Preppy)’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단순한 스타일의 복귀로 읽고 싶지 않다. 뉴욕의 고즈넉한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룩북은, Kith가 로고라는 쉽고 강력한 무기를 잠시 내려놓고, 브랜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소재’와 ‘실루엣’, 그리고 ‘헤리티지’에 대한 사적인 대화를 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 번째 대화: 바시티 자켓, 시간의 증명

컬렉션의 문을 여는 것은 단연 바시티 자켓이다. 울의 묵직함과 팔을 감싸는 가죽의 차가운 감촉. Kith는 이 클래식한 공식을 따르면서도, 자수의 밀도와 현대적으로 조율된 핏으로 자신들의 언어를 새겨 넣는다. 내가 주목한 것은 로고를 최소화하고 Kith만의 심볼을 정제된 방식으로 사용한 점이다. 이는 바시티 자켓이 가진 본연의 멋, 즉 ‘소속감’과 ‘역사’라는 가치를 요란하게 외치는 대신, 자신들이 그 헤리티지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세한 증명이다.

두 번째 고백: 니트웨어, 가장 정직한 목소리

만약 이번 컬렉션에서 단 한 벌의 옷만 허락된다면, 나의 선택은 망설임 없이 니트웨어다. 두툼한 케이블 니트와 캐시미어 스웨터들은, 로고라는 이름표 없이도 스스로 Kith임을 증명한다. 밀도 높은 짜임과 어깨선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실루엣. 버건디, 포레스트 그린 같은 깊이 있는 컬러 팔레트는 소재 자체에 대한 Kith의 자신감을 넘어, 일종의 자부심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Kith University’라는 컨셉을, 말이 아닌 만듦새로 설득시키는 가장 정직한 과정이다.

세 번째 관계: 뉴발란스와 러셀 애슬레틱, 신중한 악수

Kith의 서사는 언제나 협업을 통해 완성된다. 이번 시즌, 챔피온의 자리를 대체하는 듯한 러셀 애슬레틱(Russell Athletic)과의 파트너십은, Kith가 더 깊은 미국의 스포츠웨어 역사 속으로 탐험을 떠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뉴발란스와의 새로운 스니커즈 역시 마찬가지다. 화려한 색상 대신, 컬렉션의 전체적인 톤과 완벽하게 스며드는 컬러웨이를 택했다. 이는 상대를 자신의 무대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함께 걷는 신중한 악수와 같다. 그리고 그 신중함이, Kith의 협업을 언제나 특별하게 만든다.

개인적인 시선: 안락함인가, 권태인가?

물론 나 역시 그 익숙함 속에서 안락함과 동시에 작은 권태를 느낀다. ‘프리미엄 소재, 클래식의 재해석, 안정적인 협업.’ 이 세 개의 기둥은 이제 너무나 견고해서, 때로는 파격적인 새로움을 기대할 틈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이 안정감이 지루함의 다른 이름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로니 파이그는 변덕스러운 트렌드의 파도에 올라타는 대신, 자신이 가장 잘 쌓을 수 있는 성채를 묵묵히 더 높고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고집스러운 안정감이야말로, 수많은 브랜드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우리가 Kith에게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Kith의 2025년 가을은, 옷이 가진 본질에 대한 사려 깊은 대답이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시간을 함께 쌓아갈 옷, 그 안에 나의 이야기가 담길 수 있는 옷을 원하는 이들에게 Kith의 이번 컬렉션은 가장 현명하고, 또 가장 고요한 답안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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