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브랜드 디자인이 다 ‘잘 만든 것처럼’ 보이는 진짜 이유
요즘 브랜드 디자인을 보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분명 깔끔하고 세련돼 보이는데, 몇 개의 브랜드를 연달아 보고 나면 인상이 겹친다.
톤 다운된 컬러, 넉넉한 여백, 단정한 산세리프 타이포그래피, 과한 감정을 배제한 이미지 사용까지. 익숙하고 안정적인데, 동시에 어디서 본 듯한 느낌도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디자인들이 주는 인상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촌스럽다”거나 “못 만들었다”는 평가보다는, “요즘 브랜드 같다”, “잘 만든 것 같다”는 반응이 더 많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생긴다.
왜 이렇게 비슷해 보이는데도, 대부분은 나쁘지 않게 느껴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요즘 디자이너들의 실력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요즘 브랜드 디자인이 ‘잘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디자인 자체보다 디자인을 둘러싼 구조와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감각이 좋아진 걸까, 기준이 달라진 걸까
과거에는 디자인의 완성도를 판단할 때 비교적 직관적인 기준이 있었다.
색 조합이 독특한지, 레이아웃이 신선한지, 포스터 한 장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지 같은 요소들이 중요했다. 한 장의 이미지, 하나의 결과물이 브랜드의 인상을 대표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브랜드는 더 이상 하나의 매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웹사이트, SNS, 앱, 패키지, 오프라인 공간, 광고 소재까지 수많은 접점에서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결과물이 서로 다른 톤과 감각을 가진다면, 브랜드는 금방 흐트러진 인상을 주게 된다.
이 변화 속에서 ‘잘 만든 디자인’의 기준은 점점 개별 결과물의 감각에서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으로 이동했다.
요즘 브랜드 디자인이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감각이 획일화돼서가 아니라, 같은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구조가 표준처럼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레퍼런스가 디자인을 대신하는 시대
Pinterest, Behance, Instagram, 각종 디자인 아카이브는 디자이너에게 엄청난 양의 레퍼런스를 제공한다.
이제 디자인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빈 캔버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 만들어진 사례들을 수집하는 것이다.
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레퍼런스 대부분이 이미 검증된 구조라는 점이다.
안정적인 그리드, 실패 확률이 낮은 컬러 조합, 익숙한 UI 패턴은 반복적으로 소비된다.
브랜드와 디자이너 모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미 잘 작동했던 구조를 선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은 점점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의 도구가 된다.
튀지 않지만 안전하고, 새롭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결과물.
그래서 요즘 브랜드 디자인은 대체로 비슷해 보이지만, 동시에 큰 거부감도 주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잘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인상이 형성된다.
‘잘 만든 느낌’을 만드는 진짜 요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결과를 두고 “요즘은 미니멀 디자인이 유행이라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미니멀해서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정돈돼 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에 가깝다.
요즘 브랜드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요소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반복된다.
브랜드 톤이 명확하고, 사용하는 컬러의 수가 제한적이며, 콘텐츠 간의 위계가 분명하다.
웹사이트, SNS, 패키지 어디에서 보든 ‘이 브랜드 같다’는 인상이 유지된다.
이건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디자인이 잘 보이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흔들리지 않도록 구조를 먼저 만든 결과다.
그래서 요즘 브랜드 디자인은 눈길을 끄는 대신, 안정감을 준다.
감탄보다는 신뢰에 가까운 인상이다.
그래서 요즘 디자인은 재미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 구조는 분명 장점이 크지만, 동시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안전한 구조 위에서 디자인이 반복되다 보니, 개성이 약해지고 기억에 남기 어려운 브랜드가 늘어난다.
처음 볼 때는 괜찮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브랜드 이름이나 인상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 현상을 디자이너의 감각 부족으로 설명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브랜드가 디자인에 기대하는 역할이 달라졌다고 보는 편이 맞다.
예전에는 디자인이 브랜드를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디자인이 브랜드를 망치지 않게 지켜주는 역할에 더 가깝다.
그래서 요즘의 ‘잘 만든 디자인’은 감정을 크게 흔들기보다는, 불편함 없이 오래 유지되는 상태를 목표로 한다.
디자인보다 구조가 먼저인 시대
이런 변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브랜드 수가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실험은 비용이 되고 안정성은 전략이 된다. 그 결과 디자인은 점점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운영 가능한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이제 디자인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예쁜가?”보다는 “이 구조가 오래 유지될 수 있는가?”에 더 가깝다.
요즘 브랜드들이 ‘잘 만든 것처럼 보이는’ 디자인의 비밀은 여기 있다. 디자인을 잘하려고 애쓴 결과라기보다, 디자인이 흔들리지 않도록 구조를 먼저 설계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아마 이런 생각이 남을 것이다.
요즘 브랜드 디자인이 비슷해진 이유가 감각의 문제도, 디자이너 개인의 한계도 아니라면, 이제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구조가 중요해진 시대에 모든 브랜드는 결국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걸까.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브랜드만의 개성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까.
사실 많은 브랜드가 이 지점에서 멈춘다.
구조를 이해한 뒤에도, 그 구조 안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비슷한 디자인이 반복되고, 무난하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 브랜드가 계속 만들어진다.
하지만 구조가 디자인을 지배하는 시대라고 해서, 선택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조를 정확히 이해했을 때부터, 비로소 ‘어디를 다르게 가져갈 수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한다.
요즘 브랜드 디자인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브랜드들은 무엇을 다르게 선택하는지.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브랜드의 인상을 남기는 방법은 어디에 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