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 기사식당 골목의 이단아, 다래함박스텍
택시 기사님들이 쉼 없이 드나드는 기사식당 골목에는 보증된 약속 같은 것이 있다. 화려한 수사나 세련된 인테리어 없이, 오직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맛’ 하나로 수십 년의 세월을 버텨온 식당들. 그들의 조금은 낡고 투박한 외관은 오히려 ‘실패 없는 한 끼’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믿음의 증표다. 저마다 돼지불백, 김치찌개, 동태탕 같은 확실한 주력 메뉴를 내걸고 바쁜 기사님들의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워준다.
수유의 그 길목에서, ‘다래함박스텍’은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그 약속을 지킨다. 이곳 역시 세월의 풍파를 정통으로 맞은 듯한 서민적인 외관과, 오직 식사를 위해 존재하는 극도로 기능적인 내부를 갖추고 있다. 오래된 가게를 뜻하는 노포(老鋪)의 고고함보다는, 쉴 새 없이 주문이 오가고 철판 소리가 울리는 기사식당 특유의 ‘정직한 활기’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이곳의 메뉴판 가장 상단을 차지하는 것은 뜨끈한 국밥이나 백반이 아닌, 우리 기억 속 경양식의 상징, 바로 함박스테이크다.
클래식 한 접시의 매력
가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 것은 후추 향이 은은하게 밴 따뜻한 크림수프다. 묽지만 고소한,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갔던 경양식집에서 메인 메뉴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한 숟갈씩 떠먹던 바로 그 추억의 맛이다. 이 수프 한 그릇은 앞으로 펼쳐질 시간 여행의 완벽한 서곡이 되어준다.
잠시 후, “지지직-” 소리를 내며 뜨거운 철판 위에서 춤을 추는 함박스테이크가 테이블에 놓인다. 완벽한 반숙 계란 프라이,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 샐러드, 달콤한 통조림 옥수수, 그리고 아삭한 단무지와 피클까지. 화려하진 않지만 서로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이 정겨운 구성은 1980~90년대 경양식 한 접시의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나이프로 두툼한 고기를 가르는 순간, 긴장감마저 감돈다. 겉면은 철판 위에서 바삭하게 구워져 약간의 저항감을 주지만, 이내 부드럽게 잘려나가며 속에서 가둬 두었던 뜨거운 육즙을 ‘툭’하고 터뜨린다.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산미가 감도는 특제 소스가 이 육즙과 어우러져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너무 무르지도, 너무 단단하지도 않게, 고기를 씹는 식감과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감촉이 공존하는 정직한 맛.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좋은 고기를 제대로 다져 맛있게 굽는다’는 함박스테이크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맛을 보여준다.

소란과 평온 사이
원래 다래함박스텍은 아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찾아오던, 수유 주민들의 소문난 비밀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운명은 유튜버 쯔양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에 노출될 때마다 거센 파도처럼 요동친다. 방송 직후에는 먼 지역에서 찾아온 이들로 골목 전체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긴 웨이팅에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뜨거운 열기가 파도처럼 쓸려나가고 나면 이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동네 사람들이 기분 좋게 기다릴 수 있는, ‘적당히 인기 있는 동네 맛-집’의 편안한 얼굴로 돌아온다. 어쩌면 이곳의 진짜 힘은, 그 모든 소란 속에서도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함박을 다지고, 철판을 닦으며 자신들의 맛과 리듬을 잃지 않는 그 뚝심에 있는지도 모른다. 잠시 빌려주었던 유명세를 다시 돌려보내고, 묵묵히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이 가게가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정직한 한 끼의 가치
결국 다래함박스텍에서 우리가 맛보는 것은 단순히 함박스테이크 한 접시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지갑이 얇아도 마음만은 풍족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며, 유행이 수없이 바뀌는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는 맛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든든한 존재감이다.
값비싸고 화려한 미식의 경험도 분명 즐겁지만, 때로는 이렇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식당의 정직한 한 끼가 더 깊은 울림과 위로를 준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버겁게 느껴질 때, 변치 않는 가치가 그리워질 때, 나는 아마 이 철판 위 함박스테이크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이곳은 내게 ‘시간을 이겨낸 맛’의 의미를 가르쳐 준, 수유의 작은 거인이다.
